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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야기

아가야, 이리 와

 

잠깐만 기다려

이 아저씨가 좋은 곳으로 보내 줄게

그곳이 낯설어도 네 영역이 아니라도

바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이곳처럼 눈치 보지 말고 살아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가면 제일 먼저 너한테 고등어 형이 올 거고

뒤이어 턱시도 누나도 올 거야 

그 아이들한테도 분명 이 아저씨 냄새가 날 테니 

무서워하지 말고 잘 따라다니렴  

 

혹시 아무도 안 나와 있으면

우리 고양이 이름을 크게 불러 

그럼 바로 너를 찾아와 다 알려줄 거야  

 

다시는 이곳에 내려오지 말고

이렇게 아프게 가지도 말고

부디 잘 지내기를

 

너의 이름을 알 수도 없고 지어주지도 못했지만

이 길을 지날 때마다 이 자리를 볼 때마다

적어도 한 사람, 내 마음이 아려져 잠시 길을 멈출 테니  

그렇게 슬퍼하지 말고 또 억울해하지도 말고

미련 없이 길을 떠나렴   

 

미안하다 아가야

아가야  

 

 멀리서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보고 조심스레 다가간다. 내가 잘못 본 게 맞기를, 내 예상이 빗나가기를.

하지만 결국 내 손으로 어린 삼색 아가를 봉지에 담아야 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이럴 때마다 내 손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침착하게 천천히, 이렇게 여러 번 속으로 외친다  

길고양이 밥을 가방에 넣으면서 검은 봉지를 몇 개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언제나 나에게 일이 일어날 수 있기에 미리 챙기는 것이다. 평균 수명이 3년이란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누군가는 보내줘야 하니 얼굴이라도 아는 사람 손으로 보내주는 게 다행이라 여기고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