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고양이 마루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어둠의 저편/무라카미 하루키)
리가삼촌
2020. 11. 17. 12:42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05년)
독자는 소설가의 상상력에 대하여 어디까지 관대해질 수 있을까?
인간은 늘 새로운 걸 원한다. 새로 나온 옷, 신발, 음식, 가전제품 등 모두 마찬가지다. 창작에 있어서도 새로운 것이 주목을 받는다. 모든 작가들이 매번 같은 시점, 같은 배경(시간적, 공간적)을 설정하고 같은 나이, 성격의 주인공을 만들어 글을 쓴다면 과연 재미있을까? 또 아주 친숙한 사건(여주인공의 시한부 인생, 삼각관계, 권선징악, 출생의 비밀 등)들만 묶어서 갈등을 만들고 증폭시키면 독자들은 가만히 있을까? 물론 엔딩도 매번 해피엔딩이라고 한다면? 그건 죄악이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지만 드라마와 영화, 연극 같은 허구를 본다. 왜 그럴까?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고 감정이입을 해서 울고, 웃고 안타까워하며 또 답답해하며 욕까지 하기도 한다. 가장 악랄하게 나쁜 짓을 한 놈이 결말에서 능지처참 같은 극형으로 죽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바로 문학과 삶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학은 인간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다. 또 동시에 허구라는 아주 강력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허구가 실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주 논리적으로 만들어 독자들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허구의 범위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소설 이론에 따르면 <개연성>이 가장 기본이 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번에 읽은 하루키의 소설 <어둠의 저편>은 그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닌 것 같다. 과연 이런 일이 소설이지만 가능할까? 허구와 상상력의 세계라는 걸 감안해도 문제의 부분을 수용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위의 언급한 문장들을 보면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인 작가에게 무슨 실례냐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또 이 필자는 문학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무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필자의 생각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내 친구들에게 그리 권하고 싶지 않은 소설이다. 물론 재미는 있다. 곳곳에서 하루키의 장점이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시간은 단 이틀. 더 정확히 말하면 오후 11시 56분에서 시작해서 다음날 오전 6시 52분까지의 기록이다. 아니다 틀렸다. 6시 52분 후에 일어난 행동들도 서술하고 있으니 그 이후의 기록까지라고 해야 맞겠다. 대충 계산하면 불과 7시간에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다. 문제는 소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시점이다. 물론 시점도 소설 안의 한 부분이지만 이 소설의 시점은 특이하다. 소설을 이루는 개연성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아사이 에리의 방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렇다. 현실과 가상이 같이 존재하는 곳. 그 안에 있는 텔레비전이 연결통로가 되고 의문의 인물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과연 작가 하루키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해답은 쉽게 나올 수 없기에 아둔한 필자로서는 당장은 미뤄야 겠다.
<마리는 미운 오리새끼가 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사건을 전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아사이 에리>와 그녀의 동생 <아사이 마리>의 이야기이다. 탁구공이 랠리하는 것처럼 마리와 에리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이어지고 있다.
먼저 동생이야기를 해보자. 마리는 가을의 끝자락 늦은 밤 혼자 도시의 유흥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겨우 대학 1학년인 열아홉이다. <데니스>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며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마리는 책을 읽고 있지만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장소에 다카하시가 우연히 들어온다. 이 다카하시는 바로 마리의 언니인 아사이 에리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하지만 고교 동창인 둘은 그리 친하지 않다. 다카하시는 그리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 반면 에리는 중학교 시절부터 잡지표지 모델을 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2년 전 어느 수영장에서 에리와 에리의 남자친구 또 다카하시와 마리(당시 고등학교 2학년), 이렇게 넷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언니도 예쁘지만 동생 마리의 외모도 그리 나쁘지 않다.(카오루와 다카하시 등 모두 마리에게 예쁘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예쁜 얼굴을 몰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워낙 언니가 뛰어난 미인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둘은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다카하시는 대학생 3학년(이건 필자의 추측)이며 근처 빌딩 지하 연습실에서 악기를 연주한다. 밴드의 한 멤버인 그는 트롬본을 연주한다. 아쉽게도 오늘 밤이 그의 마지막 연주가 될 것이라고 한다. 다카하시는 밥을 먹고 둘은 그동안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카하시는 식사를 끝내고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고 자리를 뜬다. 이후에 알파빌 러브호텔 지배인이 마리를 찾아온다. 키도 크고 몸도 좋은 그녀는 바로 <카오루>, 전직 여자 프로레슬러였다. 카오루는 중국어 통역을 부탁하고 마리는 승낙한다. 둘은 레스토랑을 나가고 나이 어린 중국인을 도와준다. 한 남자가 일파빌에 들어와 성관계를 하기 위해 여자를 불렀는데 뜻하지 않게 생리가 시작되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시와가라>이며 혼자 사무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손보고 있었다. 시와가라는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자 <궈돈리(중국인 피해 여성)>를 폭행하고 가지고 있는 걸 전부 빼앗는다. 속옷까지 전부 가져갔다. 이 남자는 샐러리맨이고 집에 부인도 있는 남자다. 아이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카오루의 노력으로 카메라에 찍힌 시와가라의 얼굴을 알아냈고 그 지역에서 매춘을 관리하는 중국인 조직원에게 넘겼다.
마리는 카오루와 헤어지고 <스카이락>이란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의 점장은 카오루와 친분이 있다. 다시 다카하시가 마리를 찾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온다. 카오루가 다카하시에게 지금 마리는 그곳에 있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둘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말이 없는 마리이기에 다카하시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음악은 그만두고 법률에 관련된 일을 공부하겠다고 한다. 음악은 좋아하지만 밥을 먹고 살 수 없기에, 또 이번 4월과 6월에 재판소에 가서 무언가를 느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쁜 죄인이라고 해도 법이나 제도에 따른 공권력의 힘은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것이다. 다카하시는 깊은 해저에 사는 문어를 가지고 예를 들었다. 또한 자신도 언제든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은 스카이락을 나오고 산책을 한다. 마리는 카오루에게 듣지 못한 대답을 다카하시에게 요구했다. 다카하시는 과거에 알파빌에서 한 여성과 관계를 가졌고 나중에 계산할 때 돈이 모자랐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학생증을 맡겼고 다음날 돈을 가지고 학생증을 찾으러 갈 때 카오루에게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그렇게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은 이 소설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다카하시는 마리에게 호감을 느낀다. 다카하시는 마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같이 나눴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리는 다음 주에 중국으로 교환학생 자격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아주 긴 편지를 쓰겠다고 하며 헤어진다. 마리의 이야기는 큰 문제점이 없다. 그냥 소설이다. 그것도 하루키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소설이다.